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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임용시험 준비

중등 임용 체육, 한국 체육사 (일제 강점기, 광복 이후)

by 름푸파파 2023. 1. 14.

일제 강점기 체육과 스포츠 문화

체육

 

조선 교육령 공포시기

일제 강점기 조선 교육령 공포시기 체육은 보다 근대적인 체육의 목적 개념이 설정되었고, 다양한 체육 내용과 각종 유희가 도입되었으나, 잠재적인 목표는 체육의 자주성을 박탈하고 우민화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병식체조를 서전체조로 대치하며 민족주의적 체육활동을 통제했다.

 

학교체조 교수요목 제정과 개정시기(체육 필수화)

이 시기 체육은 식민지주의 교육 정책을 토대로 근대적 성격으로 변화했다. 유희와 병식체조, 보통체조는 각각 체조, 교련, 유희로 구분되었고, 일본은 국권회복이라는 체육의 성격을 없애 민족주의적인 체육을 말살하려고 했다.

 

유희 및 스포츠 중심 학교체육 교수 요목기

유희 및 스포츠 중심의 체육 활동이 이루어지며 대교 경기가 활성화되었으며 대표적인 경기로는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간의 정구 시합이 있었다.

체육통제기

국민학교령이 내려지며 전시동원 체제에 맞는 학제로 개편되며 체육은 군사화되었고 각종 체육활동은 통제되었다.

 

스포츠

일제 강점기 스포츠는 대부분 YMCA와 서양의 기독교 선교사들을 통해 도입되게 되었다. 현재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축구와 야구, 농구뿐만 아니라 권투나 탁구, 역도 등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다. 특히 YMCA는 한국 체육발달에 큰 기여를 했는데, 일본이 탄압해 위축되었던 한국 주도의 한국 스포츠의 맥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서구 스포츠를 한국에 도입하고 활성화시켰으며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스포츠를 전국으로 활성화 함으로써 체육과 스포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었다. 여러 종목의 스포츠 지도자들 또한 YMCA를 통해 배출되었다. 또한 독립협회 해산 후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대거 YMCA로 합류하게 되었고 YMCA의 종교적 특성은 일본의 탄압에 대한 방패 역할을 했고, 민족주의적 이데올리기를 잉태하며 한국의 스포츠를 보전하고 운동 경기를 통한 저항운동이 가능하게끔 했다.

일제 강점에는 여러 체육 단체들이 결성되었는데 현 대한 체육회의 전신인 조선체육회는 민족의 내부적 통일과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우리나라 근대 체육 정착에 기여했고, 한국의 체육과 스포츠가 일본 체육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 조선체육회는 일본의 설립한 조선체육협회와의 대결을 의식을 가지며 더욱 성장했다.

관서 체육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지닌 민족주의적 체육단체였다. 전조선축구대회를 시작으로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스포츠와 체육 활성화에 기여했다.

체육단체들의 민족 전통경기 부활과 보전을 위한 운동으로 국궁과 씨름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체육단체의 결성이 활발해지고 민족운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자 일본은 여러 체육 단체들을 해산, 통합하며 탄압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체육과 스포츠를 지탱한 사상은 민족주의와 강건한 기독교 주의이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청년회들은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운동의 일부로서 민족의 전통 경기를 부활시키고 보급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고 민속 스포츠가 계승되고 발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스포츠가 보급, 확산되었으며 한국체육의 민족주의적 경향이 결과되는 결실을 맺었다. 

광복 이후의 체육과 스포츠 문화 

광복 이후의 스포츠는 안정화된 사회를 기반으로 대중 스포츠가 발달하며 이는 엘리트, 프로 스포츠의 발달로 이어졌다.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정권 주도하에 이루어진 스포츠는 엘리트 체육 육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체육진흥 운동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학교 스포츠는 엘리트 스포츠 육성과 맞물려 교기 육성제도아래 성장했다. 전국의 학교는 지리적, 사회적 환경에 적합한 스포츠를 채택하여 그 분야의 우수 선수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러한 결실이 소년체전으로 이어지게 됐다. 소년체전은 전국체전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주니어 체육대회 창설을 기획하며 생겨났다. 이는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핵심이었고 학교 스포츠가 성장하는 진흥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우수한 엘리트 선수를 조기 발굴하여 경기력을 향상하기 위한 지역별, 학교별 노력은 과열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학생들에게 무리한 훈련을 강요하고 수업권을 박탈하는 문제를 낳게 됐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스포츠 발달

박정희 정권의 스포츠의 목적은 국위 선양이었다. 국가 대표 선수들은 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훈련하고 대회에 참가했으며 정부는 스포츠 대중화를 통해 건전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길러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국민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60년대에는 사회체육의 기반이 조성되었고, 70년대는 직장 체육이 활성화되는 시기였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의 스포츠 발달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유치하며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및 국민의 스포츠에 대한 의식 수준이 크게 도약한 시기였다. 사회 스포츠 진흥의 움직임으로 기존 엘리트 중심의 스포츠 문화가 대중 스포츠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스포츠 문화의 발달 배경은 엘리트 스포츠가 성장을 중심으로 한 대중 스포츠 발달이었다. 대부분의 정책과 흐름은 정권이 주도하며 이루어졌기에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스포츠를 적극 지원했고 스포츠 내셔널리즘을 통해 국민의 국가주의 의식을 고양하고 일체감을 조성하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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